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할 것인가

다른 사람 원망하고 탓할 거 없습니다. 다 자기가 잘못한 거니까요. 아, 짐작하신대로 조광래 감독 얘기입니다.

전 조광래 감독의 축구 전술이나 지식이나 대한 열정 그딴 게 얼마나 대단한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딴거 차고 넘쳐 봤자 자기가 직접 공차는 것도 아니고 결국 선수들을 통해 펼쳐야 되는데 그거 못하면 뭔 소용이랍니까? 얼마전에 이회택 기술위원장이 사퇴했더군요. 지난번 차출관련 갈등이 봉합될 때 '내가 선임한 대표팀 감독이니 진퇴도 같이 할 거다'고 말씀하셨던데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지 잘모르겠지만 어쨌건 바람막이가 사라진 셈입니다.

솔직히 그 당시 이회택 기술위원장을 끌어들여서 비판한 거 자체가 조광래 감독의 뻘짓이었죠. 그 동기는 이해가 됩니다.


"국대랑 올대랑 선수 놓고 싸우는데 초반에 밀려선 안 된다. 내 밥그릇은 확실히 챙기고 가야 된다."


그래도 일의 순서란게 있는 법이죠. 기술위의 중개가 맘에 안 들었다면 다음엔 최고결정권자랑 논의를 하면 됩니다. 조중연 회장 말이지요. 근데 이 양반, 아주 작정하고 언론에다 터뜨렸죠. 그 와중에 죄없는 이회택 기술위원장과 조중연 회장만 욕 바가지로 먹고 말이죠. 까놓고 말해서 이회택 위원장님이 그때 빈정상해서 이번에 관두시는 거라고 해도 전 이해합니다. 저 같아도 더러워서 같이 일 못하겠거든요.


결과적으로 화끈하게 거사를 치르고 '국가대표팀 우선'이란 전리품을 획득했지만 결국 주위 사람들 다 피곤하게 만들고 공동운명체이자 자신의 바람막이가 돼 줄 수 있는 사람이랑은 원수가 되고 만 거죠. 이 분 전술적 역량이 뛰어나시다면서 어떻게 현실세계에서는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했을까 모르겠습니다.


제가 조광래호에 뭔가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는 거 같다고 느꼈던 게 염기훈의 인터뷰를 보고서였습니다.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분명하게 "대표팀에 대한 미련 같은 거 버렸다. K리그에서 아무리 잘 해도 기회는 없을 거 같다." 이런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물론 경기에 못 뛰는 선수들에게 불만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내가 잘 하면 기회가 올 거야'라고 생각하는 거랑 '내가 잘 해도 기회는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거랑은 천지차이죠. 전 감독의 역량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가 팀내에 건강한 긴장감을 불어넣고 선수들간의 경쟁을 통해 성장을 이끌어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조광래 감독에게는 그런 모습을 찾을 수가 없어요.


(여담이지만 제가 축구팬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김학범 감독에게 회의적인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점입니다. 팀내의 긴장감이 사라지게 하고 주전급들의 태만함-특히 주축 외국인선수들-을 강하게 질책하지 못하는 바람에 팀이 갈수록 하향세를 탔죠. 후임 신태용 감독이 부임하자마자 외국인선수들부터 작살내는 거 보고 '역시...'했었습니다)

거기다 선수들 자존심은 다 뭉게죠. 김정우, 염기훈, 유병수 다 교체로 넣었다가 다시 교체시킵니다. 선수 길들이기 차원에서 했다면 이해가 갑니다. 자기 권위를 한번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도 나쁠 건 없죠. 근데 한번 밟았으면 잘 다독이든지 띄워서 써먹어야 될 거 아닙니까? 그 다음부터는 아예 본체도 안 해요. 그럼 이 선수들은 뭡니까? 다른 선수들 앞에서 일종의 '시범용'이 된 셈인데 잘도 감독을 존경하겠습니다.


이번 원정에서도 우스운 꼴이 연출됐습니다. 왼쪽 윙백 홍철이 부진하니까 2차전에선 이용래를 윙백으로 기용. 아니 그럴거면 원래 왼쪽 윙백 자원으로 뽑아서 데려간 김영권은 또 뭔가요? 이 선수, 그 잘난 언론플레이까지 하면서 '대표팀 우선'이라고 자기가 침 발라놓은 올대연령 선수인데 말이죠.

 

암튼 이 양반, 아주 제대로 꼬이고 있는데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 나갈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합니다만, 그 와중에 여러 사람이 피곤해지는 게 참 안타깝네요.

그나저나 이거 얼마만의 포스팅인지. 읽을 사람이라도 있으려나 ㅎㅎㅎ


by 로뎀 | 2011/11/23 04:59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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