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왜곡 혹은 무지
지난 9월 27일 방영된 PD수첩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습니다. 비난의 표적이 된 축구협회측에서도 관련 해명자료를 두 차례에 걸쳐 홈페이지에 게재했고, 이 작업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 속에서 PD수첩에서 제기한 의혹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진다면 그 자체로도 의미는 있다고 여겨집니다만, 당시 방송내용 가운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점들이 있습니다.


'PD수첩'관련 질의에 대한 답변서


MBC 'PD수첩' 방송 내용에 대한 1차 해명 - 후원사 및 KAM



1. 피스컵도 축협이 주최한다?

축구협회의 회계문제에 대한 의혹을 제시하면서 축구협회를 후원하고 있는 모기업체의 담당직원과 통화하는 내용을 보여줍니다. 축구협회측에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그 기업은 10억을 후원하고 있는데, 실제 담당자는 그보다 많은 액수를 후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 차액의 행방이 의심스럽다는 요지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담당자의 언급은 이랬다는 겁니다.
“…11억 후원하고요 또 피스컵에도 한 5,6억…”
분명히 ‘피스컵’이라는 말을 언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방송은 자막처리까지 하면서 차액을 강조했습니다.

축구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피스컵’이 축구협회와는 무관한 대회라는 걸 다 알 것입니다. 아니 설령 몰랐다고 해도 ‘피스컵’이라는 대회이름이 언급됐다면 추가취재를 하는 것이 기자의 올바른 자세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PD수첩 제작진은 이런 노력을 하지 않았거나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했습니다.


2. KAM과 축구협회의 유착?

KAM과 축구협회의 유착의혹을 다루면서 제작진이 KAM에 대해서 취재한 거라곤 어느 외국인 기자에게 “KAM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 것, 그리고 축구협회 관계자에게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KAM에 대해 모른다던데요?”하고 물어본 것 이게 전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결국 이로 인해 시청자들은 “축구관계자들도 모르는 의혹덩어리 회사 KAM”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됩니다.

한국국가대표팀 감독의 선임을 뒤에서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추적취재라고 보기엔 정말 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PD수첩이라면 당장 KAM본사로 찾아가든지 최소한 전화통화라도 했어야 합니다. 그런 자세가 의혹을 캐고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는 PD수첩의 정신 아니던가요? 아니 PD수첩이 아니라 세상 어느 기자라도 그렇게 해야 제대로 된 취재를 했다고 할 것입니다.

결국 이 부분에 대한 취재의 성과는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KAM과 축구협회간의 유착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최소한의 정황증거도 제시하지 못했고 방송이전에 존재했던 의혹을 말 그대로 다시 반복했을 뿐입니다.


3. 유소년축구가 죽어간다?

PD수첩 홈페이지에 올라온 방송소개글에 따르면, 축구협회가 회장님의 왕국이기 때문에 희생되는 부분이 있고, 그 중 하나가 유소년축구분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국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일본과 영국 축구협회를 취재해서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 보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방송에서는 영국의 유소년축구에 대한 내용은 없었고, 유소년축구의 비교대상으로 제시한 화면은 일본의 축구협회가 아닌 ‘주빌로 이와타’라는 J리그 클럽팀의 유소년축구팀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잘못된 비교대상을 보여준 것이지요. 그 다음으로 일본축구협회 관계자의 인터뷰가 이어지면서 “일본은 각 연령별로 우수한 선수들을 선발해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 여기까지만 보면 한국축구협회는 일본축구협회가 시행하고 있는 유소년프로그램 같은 데는 관심도 없는 집단이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실상을 따져보면 한국축구협회도 이미 그와 같은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이런 사실을 PD수첩 제작진도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축구협회가 PD수첩의 취재과정에서 제작진에게 제출한 “'PD수첩'관련 질의에 대한 답변서”의 내용 가운데 “2. 축구협회는 장기적인 로드맵도 없이 축구협회에 득이 되는 A매치에 집중한다는 불만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축구협회의 입장은 어떠한가?”에 대한 답변내용에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9) 권역별 상비군제도 구축
->1999년부터 우수 유소년 양성을 위해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눠 12에서부터 15세까지 연령별 유소년 상비군을 육성하고 있다.


즉 1999년부터 권역별로 연령별 유소년 상비군을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고(일본축협 관계자가 언급한 것과 비슷한 프로그램), 이 사실을 제작과정에서 알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 부분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대한축구협회는 유소년축구에 대해서는 일절 신경을 쓰지 않는 집단이 되고 말았고요.

제작과정에서 취재대상이 제출한 답변서 내용에 대한 확인을 하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답변서의 내용을 무시한 건지 이도저도 아니면 답변서를 읽지 않은 건지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이유야 어찌됐건 이 사실은 언론의 기본윤리를 어긴 겁니다.


4. 국가대표팀 성적지상주의로 프로축구가 죽어간다?

최소한 2002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팀의 무리한 차출은 한번도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협회 측에서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지금은 협회가 무작정 ‘선수 내놓으라’고 하면 프로구단이 어쩔 수 없이 내놓아야 하는 그런 분위기는 아닙니다.

쿠엘류 감독 초창기에 협회의 규정(FIFA 규정이 아니라 축구협회 자체규정)보다 조기 소집하려는 시도에 대해 당시 프로구단의 감독을 맡고 있던 김호와 조광래, 두 감독의 엄청난 반발이 있었고 그로 인해 결국 조기소집을 하지 못한 바도 있습니다. 그 후에 쿠엘류 감독이 각팀 감독들을 만나러 다니며 협조를 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 걸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적어도 그 후로는 국가대표팀을 위한 무리한 차출을 시도한 경우도 없었다고 보면 됩니다. 물론 공개화되지 않은 시도 자체가 아예 없었다고는 단언할 수 없지만 최소한 그로 인해 리그일정 자체가 파행화되거나 된 적은 없습니다.

또한 방송내용에 따르면 축구협회가 차출 등 일정을 일방적으로 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시즌 시작전에 이미 각급 대표팀 일정과 프로팀 일정을 미리 짜 놓는 겁니다. 그것도 협회가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연맹 실무자들과 함께 의논해서 짜는 거고 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청소년 대표 차출 문제에 관한 KFA 입장”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번 방송은 기본적인 사실관계 확인작업 등만 있으면 이미 해결되거나 별 문제가 아닌 것일 수도 있는 부분들이 방송됨으로써 축구협회에 대한 의혹을 부풀리거나 필요 이상의 비판을 받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이런 결과의 원인이 제작진의 의도적인 왜곡 때문인지 아니면 비의도적인 무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쪽이든 언론의 기본적인 부분을 무시했다는 점에서는 비판받아야 할 것입니다.
by 로뎀 | 2005/10/01 06:21 | football-잡설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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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신사장 at 2005/10/01 15:45
요즘 축협만 씹으면 좋은 의견 취급 받는 웃기는 풍토가 심히 맘에 안듭니다. 사실 현 집행부는 논란의 여지는 있어도 축구협회의 주먹구구적인 행정을 개혁하는데 나름대로의 성과가 있는 사람들이고, 따라서 성과와 한계를 명확히 지적하면서 비판의 가닥을 잡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회장님'의 정치적 성향덕분에 이런게 깡그리 무시되는 듯 하더군요. 지금 축협이 씹을려면 한도 끝도없는 박투옹과 동급도 아닌 마당에 말이죠.

하여간 좋은 글입니다. 그런데, 이거 게시판에 올리셨으면 비난이 장난이 아니었겠는데요? ㅋㅋㅋ
Commented by 로뎀 at 2005/10/02 00:01
안 그래도 후추에 올렸는데 비난은 아니고 '축협관계자 같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Commented by 나그네 at 2008/01/28 16:28
막상 PD수첩에 의한 뭇매질을 당해 본 사람들은 다 압니다. 그들 PD들의 시각이 얼마나 비전문가이며, 편협되며, 삐뚤어져 있는 가를...

말그대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방송해야 할 것인데, "편집"을 통해 앞뒤 다 잘라버리고, PD 저널리즘이라는 말도 안되는 명분으로 PD들 입맛대로만 방송을 합니다. 그것이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가만이 가질 수 있는 창조적 통찰력이 아니라 즉자적이고 얕디 얕은 ~씨 철학으로 방송내용을 도배해 버립니다. 물론 다분히 흥행에 성공한 영화를 보는 듯한 연출력을 가지고 말입니다.

가만 들여다 보십시오. 그들이 고발의 주재료(?)로 삼는 것은 분명한 실체화가 가능하고 구분지워짐이 가능한 공격의 희생양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실체가 분분명하고 사안에 따라 입장이 달라질 수 있는 주제는 다루지 않지요. 명백히 적과 아군이 갈라지는 이분법적 논리가 적용가능한 사안에 대해서만 선정적이며 선동적인 방송을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분명히 앞 뒤 배경을 다 보아가며 판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미리 자신들 입만에 맛게 잘 저며놓고 요리해 놓은 진수성찬을 시청자들에게 떠먹입니다.
문제는 그런 PD수첩같은 프로그램에 부화뇌동하는 얕은 지적 수준을 자랑하는 일부(?) 국민들이지요.
그들은 혀를 차고 팔짱을 끼며 어느듯 PD수첩의 PD들 같은 교만한 자세로 동화되어 갑니다.

참 PD수첩에 대한 웃기는 전국민적 신앙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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